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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mur

어느 음주장애인의 고백


indi pia 인디피아
indi pia 인디피아 by riNux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나는 술을 싫어한다. 못먹기도 못먹을 뿐더러 술 특유의 알싸함을 아주 싫어한다. 가장 보편적으로 먹는 소주를 예로 들면 한잔을 받아놓고 한참을 쳐다본다. "이놈을 마실까 말까.."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첫잔이라는 이유로 원치않게 원샷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아주 곤혹스럽다. 그 알싸하고 알콜냄새나는 용액을 한번에 내 목구멍으로 털어넣어야 한다니. 하지만 강압과 강권에 못이겨 털어넣고 나면 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불만 갖다대면 터질것같이 변한다. 주변사람들은 시뻘개진 내 얼굴을 보며 " 술은 혼자 다먹었구나" 라고 얘기하며 껄껄댄다.


남들은 흔히 좋은일이 있으면 한잔먹고, 나쁜일이 있으면 한잔먹는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되지 않는 시츄에이션이다. 좋은일이 있는데 왜 술이 필요하고 나쁜일이 있는데 왜 술로 풀려고 하는걸까. 본인이 애주가임을 자청하는 친구는 그런말을 했다. "좋은일이 있으면 더 기분 좋아지려고 술을 먹는거고, 나쁜일이 있으면 나쁜일을 잊으려고 술을 먹는거다" 라고. 듣고보니 그럴싸하다.


흔히들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난뒤 아니면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뒤 시원한 맥주가 먹고싶다고 한다. 가장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술을 먹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온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한다. 근데 왜 맥주를 먹는다고 하는걸까? 맥주는 술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왜 나는 맥주 반캔도 못마시고 얼굴이 빨개진채로 손부채질하면서 꺼억대는 걸까.


BEER

BEER by Pabo76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친구들이 술한잔하자고 불러내면 말그대로 한잔으로 한시간 넘게 버티곤한다. 그 모습을 보며 징하다고 얘기한다. 그럴때 나는 "한잔먹재매?" 라며 웃어넘긴다. 물론 이상하게 술이 잘 받는 날은 소주 한병 반까지 먹어본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드문 일이다. 내가 이렇게 술을 안좋아하다보니 애주가 친구들은 가슴을 치며 아쉬워한다. 술좀 먹으라고. 미안하구나 얘들아.


물론 때때로 억지로라도 술을 먹어야하는 자리가 있다. 중간중간 오바이트도 해가면서 억지로억지로 우겨넣는다. 필사적인 정신력으로 점점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내 정신을 다잡기 위해 허벅지 안쪽을 꼬집을 때도 있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후 술자리가 파하고나면 무서운 귀소본능이 온몸을 휘감는다. 무슨일이 있어도 집에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뇌전체를 사로잡고나면 머리뿐이 아니라 온몸이 아파온다. 집에 도착한뒤에는 세상이 두쪽나도 샤워와 양치질을 한다. 그리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쁜숨을 쉬어가며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에이 C발!" 을 혼자 중얼거린다. 참으로 괴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술을 잘 먹고 싶을때도 있긴하다. 술한잔으로 친해지고, 묵힌 감정을 풀고, 많은 이야기를 할수 있는 것을 보면 알콜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을 나도 받아보고 싶다. 하지만 술과 친해지는건 너무 어렵다.


술. 넌 나와 친해질수 없는거니?